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어쩔 수가 없다> 감상평 | 박찬욱 감독, 영화 해석, 사회적 의미

by jay_w 2026. 4. 6.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솔직히 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오랫동안 외면해왔습니다. 잔인한 장면이 많다는 선입견 때문에 복수 3부작 부터는 아예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 제가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개봉하자마자 관람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이 영화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박찬욱 감독에 대한 선입견

처음 박찬욱 감독을 알게 된 건 <JSA, 공동경비구역>을 통해서 였습니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까지 두 편은 재밌게 봤지만, 이후 필모그래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잔인하다는 말이 먼저 귀에 꽂혔고, 굳이 불편한 경험을 하고싶지 않았거든요. 

그 편견이 깨진 건 <헤어질 결심> 때였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멜로영화'라는 홍보 문구에 반신반의하며 극장에 들어갔다가, 결국 3번이나 봤습니다. 장르적 장치와 감정선이 이렇게 정교하게 맞물릴 수 있다는 걸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시나리오와 연출, 연기 3박자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영화였어요. 헤어질 결심이 200만 관객에 그쳤다는 건 지금도 좀 아쉬운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천만 관객을 충분히 기대했었거든요.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다는 개봉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가 봤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 노노(勞勞) 갈등이 만든 살인의 구조

이 영화의 핵심 소재는 구조조정입니다. 여기서 구조조정이란 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감축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 영화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노(勞勞) 갈등에 초점을 맞춥니다. 노노 갈등이란 사용자(고용주)와 노동자의 대립이 아니라, 같은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끼리 서로를 밀어내는 구조적 비극을 가리킵니다. 기생충이 계층 간의 충돌을 다뤘다면, 이 영화는 같은 층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만수(이병헌)가 직면한 상황은 "사람은 넷, 자리는 하나"입니다. 누군가를 제거해야만 내가 살 수 있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입니다. 제로섬 게임이란 한쪽의 이득이 반드시 다른 쪽의 손실과 같아지는 구조로, 협력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2024년 기준 국내 비자발적 실직자 수는 약 42만 명에 달합니다([출처: 통계청](https://kostat.go.kr)). 만수의 이야기가 스크린 밖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걸 숫자로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만수의 살인은 세 번에 걸쳐 단계적으로 변화합니다. 이 서사 구조는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사건을 겪으며 내면적으로 변해가는 성장 혹은 붕괴의 과정으로 읽힙니다.

- 첫 번째 살인: 자신을 철저히 위장하고 서툴게 진행. 여전히 인간적인 자아가 남아있는 상태
- 두 번째 살인: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며 교감을 나누다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짐. 죄책감과 생존 본능이 공존하는 지점
- 세 번째 살인: 실명과 경력을 공개하며 가장 냉혹하게 처리.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스스로 지우는 행위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순간이 바로 이 세 번째 살인이었습니다. 그 방법이 잔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무 익숙한 논리로 진행되기 때문이었습니다.

## 결말은 정말 해피엔딩인가

표면적으로 만수는 완전 범죄에 성공합니다. 재취업에 성공하고 가족과 다시 포옹하는 장면은 분명 해피엔딩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박찬욱 감독다운 지점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공장의 불이 하나씩 꺼지는 것은 소등 자동화 시스템, 즉 AI 기반 자동화 설비가 작동하는 장면입니다. AI 기반 자동화란 인간의 개입 없이 시스템이 스스로 판단하고 처리하는 기술 구조를 말하는데, 이 장면은 만수 역시 머지않아 그 시스템에 의해 대체될 운명임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불빛이 꺼지는 속도가 조용하고 일정하다는 게 오히려 더 섬뜩했습니다.

가족의 내면도 이미 무너져 있습니다. 만수는 9년간 유지하던 금주를 깼고,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 역시 만수에 대한 마음이 전과 같지 않죠. 가족은 겉으로는 포옹하지만, 이미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하나 남습니다. 그렇게 지킨 자리가, 그렇게 돌아온 가족이, 과연 그가 지키려 했던 것과 같은 것일까요? 

이번 작품을 보며 솔직히 이런 의문도 들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이번엔 흥행을 의식한 것은 아닐까 하고요. 이전 작품들에 비해 코믹 요소가 더 많고, 대중이 진입하기 쉬운 장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흐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압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연출 방식은 조금도 희석되지 않았습니다. 대중성을 노리면서도 자기 색채를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게 거장이라는 이름이 붙는 이유일 겁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한 번으로는 다 못 보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본다면 또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아직 챙겨보지 못했다면, 헤어질 결심부터 시작해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저처럼 편견이 깨질 수도 있으니까요.

---
참고: https://youtu.be/InaRMazLFHQ?si=KPYPEEbgeMizqlx0